먼저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구성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두는 ‘포괄적인 과거사 청산’ 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포괄적 과거사 특위 입법을 공식적으로 제안하면서 여야간의 중요 쟁점이 되었고, 몇몇 정부 부처에선 자발적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를 구성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여 그 토대 위에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당연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현 정권이 역대 정권과는 달리 과거사 청산에 보다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의주시하면
과연 정부에게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 심히 우려된다. 참여정부가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과거청산의 의미가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여 그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대통령 취임 이후 그의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듯이 지금의 분열되고 갈등적 상황이 지속되는 원인이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과오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우리 사회는 해방 60여년이 다 되어가도록 식민지의 잔재 청산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미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허나 식민지 잔재 청산은 어디 친일 문제 뿐이겠는가. 일제의 전쟁때문에 800만명에 이르는 자국민이 강제로 연행되어 노예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고
70, 80세가 넘는 오늘날까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건만, 우리 정부는 이들의 절박한 애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 최소한의 정보를 얻기 위해 일으킨 한일협정문서 공개요구 소송에서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 문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굴욕적인 자세로 일관하더니 끝끝내 공개를 거부하였다. 한술 더 떠서 대통령 자신은 얼마 전 제주도에서 가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임기 중에 과거사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과거사를 완전 무시하는 발언을 하더니, 불과 얼마 안 되어 과거사 특위를 제안하였다.
우리는 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이미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실감하고 있다. 그 것은 이미 제정된 특별법에 의해 9월에 발족하게 되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구성에 대한 실행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9월 6일에 위원회가 정식 발족한다고 되어 있으나 한달도 채 남겨 놓지 않은 지금까지 시행령 제정이나 위원회 구성에 대한 준비는 그야말로 겉을 맴돌고 있다. 그동안 시민연대는 수차례 이번 위원회가 가지게 되는 역사적, 민족적 대의를 설명하고 민간 전문 연구자 및 활동가와 함께 위원회 구성에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였고, 위원회 구성에 대한 기획서까지 제안하였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0대의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죽기 전에 강제동원의 진상규명만이라도 제대로 해놓기 위해 그 노구를 이끌고 3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며 특별법을 만들었건만, 지금 9월 6일 발족마저도 힘들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아직 법안이 발의도 되지 않은 과거사 청산 진상규명의 조직으로 인해, 현재 기획예산처가 이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의 조직을 대폭 줄이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나오고 있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 의지가 그야말로 기만적인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지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이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지않으면
우리는 그 진정성을 평가해줄 수 없다.
또한 행정자치부의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준비기획단’은 보름 앞으로 다가온 위원회 출범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전원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우리는 준비기획단이 자신들의 역량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진상규명이라는 역사적 과제의 첫 출발을 유보시킨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아울러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조직을 이유로 예산 축소 운운하는 기획예산처의 속보이는 조급한 처사를 경고하는 바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는 이미 통과된 법률안을 성실히 수행할 따름이라고 누누이 밝혔듯이, 이미 통과된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위원회 구성과 출범을 차질없이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데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노무현 정권의 인식에 적극 공감한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이 나라를 진정으로 지켜내고 발전시켜 온 기층 민중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암울한 식민지의 압제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현재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들의 피해에 대한 정당한 자리매김과 평가가 있어야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 우러나온다는 것을 먼저 새겨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과거사 청산을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우선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구성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한다. 만약 현 정부가 포괄적 과거사 청산에 관한 입법을 명분으로 강제동원 진상규명이라는 역사적인 실천을 소홀히한다면, 이는 민족사적인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며, 엄정한 역사적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04년 8월 24일 강 제 동 원 진 상 규 명 시 민 연 대 /
한 일 민 족 문 제 학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