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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진정한 강제동원진상규명을 하는 특별법이 되어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2004.08.02
조회수1350


<한일간 과거청산을 위해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 강제연행문제연구분과장)

riversideshin@empal.com

올해 2004년 2월 13일, 만 3년간의 투쟁 끝에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연인원 790만 여명의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안에 의해 국무총리 산하에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회에서 피해자의 신고 접수 및 현지 조사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게 된다.

정부는 5월에 위원회 구성을 위한 정부기획단을 발족했다. 관련 시민단체도 역시, 그동안 특별법 제정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온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 제정 추진위원회’가 특별법 추진위원회의 성과를 이어갈 새로운 연대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로 재편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시민연대는 한일민족문제학회를 비롯한 연구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전문단체, 피해자단체, 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되었다.

시민연대는 그동안 축적해 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특별법을 실행하게 될 위원회 구성의 방향을 설정하고 제시하기 위해 전문가들로 기획단을 발족하여 4개월간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결과, 지난 6월에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구성에 관한 기획서>(이하 기획서)를 출간하고 정부기획단에 제출했다. 기획서에는 강제동원에 대한 약사(略史) 및 진상규명 100대 과제는 물론 위원회의 조직 및 업무내용, 일정표 등 업무진행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진상규명 100대 과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끌려가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돌아왔는가’ 하는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향후 위원회의 업무가 종료되었을 때, 진상규명 100대 과제는 모두 해답을 얻게 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연대가 기획서를 발간하고, 진상규명 100대 과제를 발표한 것은 한국역사상 유일무이한 기회인 특별법안의 역사적 의의를 되살리고, 올바른 진상규명을 이루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또한 특별법에 의한 진상규명이 한국 역사와 민족에 추호도 부끄럽지 않은 작업이 되었으면 하는 피해자들의 소망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월 26일 정부기획단이 입법예고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시행령(안)은 피해자의 소망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8월 6일까지 입법예고시한을 가진 시행령(안)의 내용 가운데 핵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총 정원이 42명인데, 그 가운데 27명이 파견공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27명 가운데 6명은 경찰과 검찰공무원으로 충원하도록 되어 있다. 둘째, 조사업무를 담당할 부서가 소규모이며, 전체 강제동원진상규명의 대상을 포괄하지 않고 있다. 즉 귀환이나 원폭문제는 제외되어 있다.

시행령(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갖는다. 첫째, 현재 성동원(일본군위안부, 기업위안부)의 수를 제외하고 연인원 790여만명에 달하며,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 중국, 러시아 지역에 까지 이르는 조사지역을 42명의 정원이 담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평가된다. 현재 일본에서 학계와 지역 활동가의 노력에 의해 30여년간 진행된 조사를 통해서도 강제동원의 실상은 모두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간신히 윤곽을 파악한 정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그럼에도 42명의 정원과 비전문가인 27명의 공무원으로 위원회를 발족하고자 하는 시행령(안)의 내용은 진상조사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둘째, 구성원의 비전문성이다. 시민연대는 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기획단을 구성하면서, 기획단 구성원으로 참여자의 기준을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로써 관련 연구논문 1편 이상, 관련단체(피해자단체, 피해자지원단체, 연구단체) 상근 조사활동 1년 이상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기준은 비록 학력 및 연구성과로 공인된 연구자라 하더라도 강제동원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해야 강제동원진상규명의 방향과 업무내용에 대한 조언이 가능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전문성에 대한 철저한 문제의식에 비해 27명의 파견공무원이 조사업무에 참여할 수 있게 한 시행령(안)의 내용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셋째, 귀환과 원폭부문이 제외된다면, 4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피해나 아직 인양조차 하지 못한 다이헤이마루 사건의 진상은 물론,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발생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7만명에 대한 진상조사는 다시 역사의 그림자로 남게 된다.

넷째,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전체 틀 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신고접수에만 의지하고자 하는 정부측의 문제의식은 조직구성에서도 여지없이 반영되고 있다. 비대한 행정과의 업무에 비해 조사업무를 담당할 부서는 소규모이며, 업무분장의 기준도 애매하다. 신고접수와 관련이 되는 홍보업무가 조사과에 분장이 된 반면, 직접 신고접수를 받게 되는 실무위원회의 업무는 전혀 다른 부서에 배치되어 있는 점도 한 예이다.

이와 같은 시행령(안)이 입법예고된 배경은 바로 강제동원에 대한 정부 인식의 정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며, 향후 동북아시아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울러 진상규명을 위해 나가야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 많은 시행령(안)을 과감히 제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시민연대가 제공한 기획서나 전문적인 조언도 별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시행령(안)에 대해 정부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할 공청회 기회도 마련하지 않고, 10일간의 입법예고를 거쳐 확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현재 시민연대는 큰 우려를 나타내며, “위원회 보이코트”라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논의하고 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은 연구단체, 전문단체, 사회단체, 피해자단체 등이 힘을 모아 발의하고 제정한 법안이다. 이 법안을 통해 한일간 과거청산을 제대로 해보자는 공감대가 모여 이룬 법 제정이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위해 법안의 필요성을 인식해서 발의한 법안이 아니다. 정부로서는 진상규명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이나 인식정도가 낮을 수 있다. 평소에 ‘강제동원’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은 국민이 비단 공무원에 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무원과 정부의 자세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나 공격은 문제를 본질과 무관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의견이 다른 세력에 대한 공격이나 배척이 아니라 한일간 과거청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길이다.

법안의 제정 이후, 법안을 제정한 시민단체는 정부가 한일과거사청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이고, 전문성을 통해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러한 시민단체의 노력에 대해 정부가 화답할 차례이다. 그것은 정부에게 미진한 문제의식과 전문성을 시민단체의 힘을 빌어 채워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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