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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60주년, 전후60주년-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2004.08.01
조회수2610
해방60주년, 전후60주년-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작년 8월 출판된 한국의 히로시마(이치바준코, 역사비평사)에서 일제강점기의 합천군과 합천농민들이 왜 일본 히로시마로 도일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규명과 아울러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당하여 한평생 원폭후유증으로 삶이 유린되는, 건강권과 생존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체 사회적인 소외속에서 질병과 가난이 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에게도 대물림되는 현실속에서 원폭피해자가족들이 겪는 정신적,육체적,사회적인 고통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한국시민사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를 비롯한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2,300여명의 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이 있는 원폭피해자가족들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가족사들을 저마다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21명의 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의 이야기가 담긴 핵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저와 다르지 않은 현실인식과 병마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자기 질병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서 오는 소외감등 한개인, 한가족들이 이겨내기에는 원폭(原爆)2세환우(患友)와 원폭피해자가족이라는 멍에는 견뎌내기 힘든 현실이 될 것입니다. 내년은 한국사회와 일본사회는 해방60주년과 전후6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것은 한국사회와 일본사회가 가지는 각기 다른 역사인식과 사회인식 차이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정부와 일본사회는 지난 59년동안 세계유일한 원폭피해국이라는, 전쟁피해국이데올로기를 일본사회에 그리고 전 세계에 확대재생산하여 왔습니다. 원폭이 떨어기지전 일본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과 불법적인 식민지수탈정책으로 조선에서는 800여만명이 징병,징용,납치등으로 일본군‘위안부’와 히로시마,나가사키,홋카이도등에서 12시간이상의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임금착취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두고 온 고향산천과 부모님,자식,아내등을 가슴 가득히 그리워하며 전쟁에 쓰여질 석탄과 무기를 만들며 죽어간 수많은 조선인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혹독했던 노동에 대해, 인간 이하의 강요당한 노동에 대해 평생을 몸서리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시민들은 일본제국주의의 광기(狂氣)어린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70여만명의 시민들이 원자폭탄에 피폭당하였습니다. 59년이 흘렀지만 그 아픔은 한국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광기(狂氣)의 역사(歷史)가 아직도 한국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 일본총리는 총리 취임후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 강행하고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때 희생된 전몰자와 침략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등이 합사되어 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 취임후 지금까지 4번이나 신사를 참배하면서 어려울때 가미카제(神風) 대원들을 생각한다라는 말로 신사참배를 정당화하였으며 일본우익과 자민당내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국회와 일본사회는 헌법9조를 위반하면서까지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하였습니다. 또한 작년 11월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중 다수의 의원들이 일본의 전후 헌법이라고 하는 평화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사회의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주의는 한국과 중국등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침략을 당했던 국가와 사회에 정치적,사회적 부담을 넘어 위협을 느낄정도가 되었습니다. 일본정부와 일본사회는 오직 59년동안 유일한 원폭피해국이라는 전쟁피해국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일본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은 한국원폭피해자와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등 일제피해자들에 대한 어떠한 공식사죄와 보상을 외면하면서 일제피해자들의 인권(人權)을 유린한 역사만 가지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과거 독일나치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유대인과 주변국가의 피해자들에게 독일정부는 전후 사죄와 보상을 하였으며 독일의 전총리였던 빌리브란트는 역사에 눈감는 자 미래를 볼수 없다라고 하여 독일정부와 독일사회의 전후보상문제와 과거사청산을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해 왔습니다. 독일정부는 지난 1962년 이스라엘과 배상협정을 맺고 250억 마르크를 국가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급하고 나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150억 마르크를 지급하는 등 각종 배상에 지금까지 2000억 마르크를 지출하였습니다. 그리고 80년대후반부터 강제노역자에 대한 배상을 주장해 온 사민당과 녹색당이 98년 정권을 잡은 후 슈뢰더 정부는 강제노역자에 대한 배상기금 1000억 마르크를 조성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강제노역의 책임이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들에도 있다는 점에서 기금의 절반은 기업들이 부담하도록 하였고 도이치 방크, 알리안츠, 다이믈러크라이슬러-벤츠, 지멘스, 바이어등 6500여개 기업은 이른바 연대펀드(Solidarity Fund)를 만들어 500억 마르크 기금을 조성하였습니다. 이처럼 독일정부와 독일사회는 나치정권하에서 피해를 입은 유대인과 주변국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전후보상에 노력하였고 독일사회에도 나치정권의 전쟁범죄를 끊임없이 기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독일전역에 전쟁포로수용소, 유대인 희생 자료관등 모두 100여개 지역에 나치범죄와 관련된 장소를 유지.복원해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후세들을 위한 교육장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수탈정책으로 합천과 합천농민들의 처절했던 삶들과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로 도일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의 역사를 올바르게 진상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총독부의 식민지수탈정책인 일본인의 식량확보를 위한 쌀 증산정책 즉 조선의 농업전체를 미곡단작형 농업정책과 조선을 일본의 방적·제사자본의 안정된 원료공급지로 만들기 위한 육지목화 재배와 양장업의 강제보급정책을 실시하면서 식민지 지배가 가속화될수록 합천농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되어 갔습니다.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의 만주침략이후 전쟁물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합천농민들의 삶은 더욱 더 어려워져 많은 합천농민들이 이농의 괴로움을 겪었으며 당시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에 의한 도항제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도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합천농민들중에는 보릿고개를 넘을 수 없게 되어 유리걸식하는 무리,이촌재민이 속출하여 전체 합천군 인구의 7할이상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상태에 놓여 있게되며 1930년,1932년,1935년,1940년은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간 도일자 수가 급증한 해로서 합천에 큰 홍수나 극심한 가뭄이 있었던 다음해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향산천을 떠나 일본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식민지수탈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생활고에 의한 생존권 위협이 합천농민들에게 확산되어 갔습니다. 광기(狂氣)어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70여만명의 엄청난 대량살상을 내면서 종식되었습니다. 전체 원폭피해자 중 한국인원폭피해자는 7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합천출신 한국인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차별과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1945년까지 고향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원폭에 피폭당한 원폭피해자는 거의 일생에 걸쳐 방사능 피해를 주는 지속성, 피해자의 건강.생활.정신에 걸쳐 종합적으로 피해를 주는 종합성등 재래식 무기의 피해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며 평생을 미증유의 원폭후유증으로 인간의 삶 자체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이와같이 원폭에 의한 원폭후유증은 한국원폭피해자들에게도 나타나 평생을 병마와 가난속에서 건강권과 생존권을 위협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지난 59년동안 일본정부는 차별적인 피폭자원호법으로 자국의 원폭피해자만 법적보호하여 한국원폭피해자들로부터 원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정부 역시 한국원폭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외면하여 왔습니다. 내년은 해방60주년과 전후60주년이라는 상반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한국사회와 일본사회는 마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에 눈감는 자 미래를 볼수 없다는 독일 전수상의 말처럼 올바른 역사인식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륜보편적인 화두이며 정의(正義)입니다. 독일의 나치정권에 의해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는 전후 나치정권하에서 행해졌던 모든 악행에 대해 시.공간적인 시효를 두지 않고 역사의 이름으로 과거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치의 부역자들을 찾아 역사의 법정에 세워 정의를 실현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59년동안 일본정부와 일본사회는 유일한 원폭피해국을 앞세워 허구적인 평화주의를 확대재생산하여 왔습니다. 유일한 원폭피해국이라는 의미속에는 전체원폭피해자 70여만명중 10%를 차지하는 7만여명의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제외시키며 그들만의 허구적인 평화를 주장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일으켜 조선전역을 병참기지화로 만들어 식량,사람등을 공출하여 800여만명의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징병,일본군‘위안부’등 오직 전쟁을 위해서 아무런 의미없이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시켜야 했습니다. 수많은 동아시아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든 전쟁전범들인 히로히토일왕과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정당한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은체 일본정부는 히로히로일왕을 패전 전과 후를 법적으로 단절하지 않은체 상징일왕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존치시켜왔습니다. 또한 태평양전쟁의 A급전범 14명을 군신(軍神)으로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지도자들이 스스럼없이 참배하여 일본사회에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화를 조장하였으며 한국,중국등 주변국가들에게도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유일한 원폭피해국이라는 허구적인 일본의 평화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일본정부와 일본사회의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수탈정책에 의한 합천과 합천농민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필연의 역사를 규명하여 올바른 역사적 자리매김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일반에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는 합천을 다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3대 삼보사찰이 있는 해인사가 있는 곳보다는, 한 나라의 군사독재자대통령(전두환)이 태어난 곳보다는 일제36년의 기나긴 식민지수탈정책으로 생존의 몸부림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로 갈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처참하게 원자폭탄에 피폭당하여 평생을 원폭후유증이라는 미증유의 병마속에 빈곤과 사회적인 소외의 악순환을 겪으며 지난 59년동안 일본정부, 미국정부, 한국정부로부터 아무런 법적인 보호없이 인간답게 살아갈수 없는, 인권이 유린된 역사로서 재인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국의 2,300여명의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이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해방후 세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의해 지금 이시간까지도 그 광기(狂氣)의 역사가 한국원폭(原爆)2세환우(患友)들의 몸과 마음을 관통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정부와 일본사회의 전후60주년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자리매김을 위해서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원폭(原爆)2세환우회(患友會)[http://cafe.daum.net/KABV2PO ] 대표 김형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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