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목) 오후 7시 폐막식 / 뒷풀이
7월 24일(토) 오후 6시 ► 일시 : 7월 22일(목) - 24일(토)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 장소 : 종로구 운니동 학교법인 덕성학원 재단본부 건물(운현궁 양관) ► 작품 구입 및 후원 계좌 : 우리은행 350-094925-02-101 (최홍섭) ► 문의 : 범국민위 사무처 02-736-5158, 최홍섭 기획부장 017-556-6321 * 작품전문은 pdf 파일로 홈페이지에 올려두었습니다. 작품이 실린 도록을 다운받으실 분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http://www.genocide.or.kr/news/news_content.asp?idx=116&midx=0 <채의진 선생이 살아온 길> 1949년 12월 24일, 경상북도 문경 석달리 주민 86명이 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마을 사람들이 빨치산 토벌차 나온 국군 부대를 환영하러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국민학교 3학년생이던 채의진 선생은 친형의 주검에 깔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어머니와 형, 누나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한스런 기억은 4.19 직후 대학생이던 선생으로 하여금 문경학살사건을 세상에 알리게 했으나 5.16쿠데타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만다. 그후 한동안 영어 교사로 일하던 선생은 1980년대 후반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결심하고 학살 진상규명의 길에 뛰어들었다. 선생은 그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족들을 만났고, 미국에도 여섯 차례 건너가 자료를 확보하여 국군 모 사단 2개 중대가 어머니와 마을 주민을 죽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감추고 덮으려고만 했다. 선생은 진상규명을 외면하는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1989년부터 지금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채 기다랗게 늘어뜨리고 있다. 학살의 진상이 밝혀지는 날, 아니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는 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머리를 깎을 거란다. 채의진 선생은 문경유족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역임했고 고희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이번에 진상규명 기금마련을 위해 내놓은 작품들은 1980년대 이후 선생이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작품 재료를 모으고 대패와 칼과 정과 끌과 망치에 씻기지 않는 분노를 담아 통한의 세월을 녹여낸 작품들이다. 선생의 작품들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만큼이나 힘이 넘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을 압도하진 않고 포근히 감싸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천추의 한을 칼끝에 담아 승화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채의진(蔡義鎭)의 이모저모> ∘ 1936년 4월 20일 경북 문경산(産) ∘ 1956년 상주중학교 3년 졸업 ∘ 1959년 상주 중▪고등학교 ∘ 1974년 명지대학 외국어 교육학과 ∘ 21년간(1965~1986) 중․고등학교 영어교사봉직 ∘ 주일한국문화원 초대전 참가 (1989.4.17~22) ∘ 미국네바다 주지사 창포 서도예전 초대전 출품 (1989.4.25~30) ∘ 필리핀 전대통령 마카파갈(Macapagal)기념사업회초대전 참가 (1989.7.17~22) ∘ 6개월간(1990.8~1991.1) 미국 인디아나(Indiana)주에서 작품활동 ∘ 중국 길림성 박물관 초대전 참가 (1992.6.17~21) ∘ 93중한서화교류전(북경중국미술관)참가(1993.6.21~25) ∘ 대한민국 통일예술대전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 한국미술제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 한국문화예술종합대상전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 국제예술대상전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 국민훈장 석류장 (1980.12.5) ∘ 세계평화교육자상 (1993.11.27) ∘ 중국길림서화함수대학교 명예교수 수임 (1993.6.18) ∘ 1989년부터 50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상장(패) 공로상(패) 감사장(패)를 받다 <<이후 지역 행사 안내>> - 7월 26일 노근리 학살 추모위령제 - 7월 28일 - 8월 2일 2004 평화걷기-제천 의림지에서 간디학교까지 범국민위 홈페이지 방문하기 http://www.genocid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