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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보도문 (서경식 교수님 발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2006.06.22
조회수3848
윤동주 ‘서시’ 일본어 번역본 오류있다. 재일동포 서경식교수 지적 이부키 1984년 번역때 정반대 해석 진실 훼손뒤 일본어역 정본으로 사용 한겨레신문. 2006년 6월 16일. 한승동 기자





» 윤동주 서시

‘죽어가는 것들→살아있는 것들’로 왜곡 일본에 저항, 의도적으로 은폐

윤동주 서시는 현재 일본 고교 국어교과서인 <신편 현대문>에 실린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에세이 ‘윤동주’에 전문 번역본이 인용돼 있다. 또한 윤동주가 다닌 도시샤대 구내에 1995년 세워진 그의 시비에도 이 번역본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번역본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을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야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구절로 바꿔버린 것이 논란의 초점이 됐다. 윤동주 연구가 이부키 고가 서시를 그렇게 번역해 84년에 출간했으며, 그 번역본은 지금 거의 일본어역 정본처럼 자리잡고 있다.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있는 일본 도쿄경제대학의 재일동포 2세 서경식 교수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논란에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머조리티(다수자/주류)와 마이너리티(소수자/비주류) 간의 왜곡되고 불평등한 ‘식민주의적 권력관계’가 짙게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17일 한일민족문제학회 주최로 숙명여대에서 열릴 강연회에서 발표할 ‘디아스포라와 언어-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를 자세히 다룬다.

일본의 대표적인 조선문학연구자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교수는 일찍이 서시의 번역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윤동주가 서시를 쓴 당시 일본 군국주의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갔고, 조선인의 말과 민족 옷, 생활풍습, 이름 등 민족문화의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였다.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외친 그는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당연히 심히 증오했을 것이다. 이부키의 번역은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도 꼭같이 사랑한다는 꼴이 돼버리지 않을까?”

그러자 이부키는 자신의 2002년판 책에 이에 대한 반박문을 실었다. 그는 “모든 죽어가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기에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며 “모든 죽어가는 것, 모든 살아가는 것 모두 다 동의이어(同義異語)”라고 주장했고, 아울러 “(윤동주의) 실존응시적 사랑의 표출에는 군국주의 일본인에 대한 미움 같은 것은 상관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서경식 교수는 이부키가 번역하기 전에 이미 김소운, 김학현 등의 번역본이 출간됐고 김학현은 문제의 구절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부키는 자신의 번역시집에 붙인 문헌목록에 김학현의 책을 실어 그런 번역이 이미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해,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해당 구절을 굳이 그렇게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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