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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의 조선인식은 바뀌지 않았는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2004.12.31
조회수2541
* 다음 글은 요시자와형에게 쓴 편지이지만, 학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요시자와형에게 추운날씨속에 잘 지내시는지요? 이곳 대구는 눈이 많이 많이 내리지 않아서 아쉽긴 하지만, 오랜만에 겨울다운 추위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 많은 기상이변으로 계절(季節)이 없어지는 시대에, 겨울추위를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일자리가 없어지고 먹을 것이 없으며 추위에 떨 이웃을 생각하면 가슴속에 찬 기운이 들어옵니다. 또한 연일 뉴스를 통해서,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피해소식을 듣습니다. 매일 사망자수가 늘어나서 어쩌면 10만명까지 죽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이번 사고가 난 것은 분명히 천재지변이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은 사람의 책임, 곧 지진을 연구하는 학회에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6개월전에 경고했음에도 귀기울이지 않은 인도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정부, 또 지진이 일어난 지 얼마 안되어서 미국에서 각국정부에 발생사실을 통보했음에도,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로 위험경고발령을 하지않고, 피해가 있는 지 3시간후에 경고발령을 인터넷으로 한 태국정부와 관광산업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바닷가에 온갖 휴양시설을 만든 각국 정부와 그것을 레저산업(leisure industry)으로 이용한 관광객들의 책임,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도, 다시금 사람의 일을 다하고 하늘이 준 운명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라는 오래된 경구를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시스템만 고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人事)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무슨 이유로 일본의 조선인식이 바뀌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에 고민하고, 지금도 일단(당분간) 고민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쓰셨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저 역시도, 왜 일본의 조선인식은 바뀌지 않는가?라는 문제를 몇 일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알려드릴려고 편지가 늦어졌습니다. 저는 國民國家로서 日本國 形成過程을 생각합니다. 歐美의 제국주의침략에 직면한 日本(아직 국민국가명으로 일본국을 형성하지 않았기에, 日本으로 통칭합니다.)으로서는, [自己存在認識]을 새롭게 정의해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國民國家形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떤 국가를 만들것인가를 둘러싸고 고민을 했기에, 岩倉使節團을 歐美에 보내어서 각국사정을 조사하고, 모델을 찾았습니다. 이 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알 수 있지만, 이미 歐美가 아닌 다른 지역은 모델조차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사절단이 돌아와서, 형성한 일본국은 大國主義를 중심에 두고 철저하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歐美의 心象的 아시아 認識)에 기초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해 뜨는 곳인 Orient(아시아·아프리카)에 살면서도, 해가 지는 Occident(歐美)를 지향하고 살아남아야한다는 점(脫亞入歐)에서, 일본의 고민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Orient를 철저하게 부정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일본국이 [自我]가 되고 아시아·아프리카는 [他者]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歐美 역시도 [他者]였습니다만, 아시아·아프리카는 [野蠻的 他者]였고, 歐美는 [文明的 他者]였다는 점에서, 人種的·民族的·社會進化論的 差異가 있었습니다.) 살아남기위해서 Orient를 부정하고, Occident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인식담론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것을 위해서 [文明談論]이 출현했습니다. Orient는 野蠻이고 Occident는 文明이라는 인식담론속에서, 近代歐美文明을 지향하고 古中世아시아·아프리카野蠻을 문명화시키는 임무를 일본국이 부여받았다고 인식했습니다. (所謂 名譽白人)이것이 日本國이 形成되는 過程에서 다시금 [自己存在思惟]를 형성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1930년대가 되어서는 近代超克論(歐美文明超克論)이 되어서 영·미를 대상으로 한 大東亞戰爭(- 아시아가 크게 단결해서 鬼畜英美와 전쟁을 한다) 일으키게되는 논리구조가 됩니다. 이 과정속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받고 있던 대만·조선·아이누·오키나와등의 古中世아시아野蠻은 갑자기, 대동아공영권으로 통합되어 영·미를 대상으로 한 대동아전쟁에 참전하게되지만, 차별과 멸시의 차별구조는 온존시킨 채 통합시킨 것이기에, [植民地 - 帝國]이라는 二重的 支配體制는 그대로 유지된 것입니다. 대동아전쟁의 결과로 1945년 8월 9일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이고, 일본국은 영·미에 敗戰을 했지만 결코 이것은 아시아에게 진 것이 아니기에, 아시아 멸시와 차별의 구조는 그대로 지속되게 됩니다. 그래서 아직도 歐美와 歐美문화는 지향할 대상이지만, 아시아와 아시아문화는 그리 지향해야할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본 國民國家로서 日本國의 朝鮮認識의 과정은 위와 같습니다. 또한 지금에 있어서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분리되는 것은 남한은 文明이고 歐美이지만, 북한은 野蠻이고 아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남·북한은 일본국이라는 自我를 형성하기위한 他者이고, 1945년 이전 近代的(帝國主義·戰爭[勝]) 主體를 형성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인 前近代的 (植民地·戰爭[敗])對象일 뿐입니다. 만약 1945년 8월 15일의 敗戰을 植民地解放戰爭을 통해서 경험했다면, 이를 통해서 철저하게 國民國家로서 日本國 形成過程을 비판했다면, 일본국과 아시아와의 관계는 [植民地 - 帝國]관계를 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미국에 의해서 反共·反蘇를 위한 [逆-course]에 들어섰기 때문에, 일본근대를 형성한 成功神話[帝國主義·戰爭]는 깨어지지 않고 지속되었으며, 1960∼70년대 高度成長을 통해서 또 다른 成功神話[資本主義]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제 다시금 후자의 성공신화[資本主義]를 통해서, 전자의 성공신화[帝國主義·戰爭]를 획책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戰前과 戰後 成功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제 3세계 국가와 세계가 고통스러웠는지를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고, 省察속에 새로운 連帶와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면, 불행은 다시금 시작될 것입니다. 이라크파병은, 일본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어서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일본국은 불행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 것인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모릅니다. 다가올 불행을 막기 위해서. 분발해야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 또 편지 쓰겠습니다. 康健하시길 빌며 2004년 12월 30일 조진석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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